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영호남 지리산 일대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운 산청출신 항일투사 정성수(30·삼장면)선생 등 91명의 인적사항이 기록된 문건을 3·1절을 앞두고 하동군의 한 향토사학자가 발굴 108년 만에 공개했다.
이번에 문건을 공개한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전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장)은 “국가기록원에 소장중인 조선총독부 문서 ‘폭도에 관한 편책’ 경남경찰부장(지방청장)의 보고서(1908년)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산청출신 항일투사 91명에 관한 인적사항을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건에는 출신지 별로 주소 성명 나이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문건에 의하면 시천면 지촌마을 이덕오 선생은 7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제와 맞서 싸웠으며 삼장면 주점마을 정경석은 18세의 어린 나이에, 시천면 대곡 이흥대는 52세에, 사월면 단속 이경순은 32세에 항일투쟁에 참여 했던 것으로 기록 돼 있다.
지역별로는 삼장면과 시천면 주민이 대거 참여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문건에 기록된 91명의 항일투사는 산청출신 경남창의대장 박동의 휘하에서 1907년 초부터 1908년 말까지 2년간 조인환(산청) 이덕길(산청) 이학로(경북 영천) 박인환(하동) 서병희(양산) 이사언(합천) 이만용(사천) 류명국(하동) 양문칠 우수보 등과 함께 산청 하동 함양 거창 진주 합천 남원 구례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특히 이들은 일제 치하에 있던 산청경찰서와 군청, 합천우체국 및 일본군 남원수비대 본거지를 습격하는 등의 활약을 하며 일제에 큰 타격을 가했다.
하지만 1908년 10월 산청군 시천면 동당에서 박동의 경남창의대장이 일본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전사하자 같은 해 11월 이들 의병들은 해산했다고 문건은 밝히고 있다.
한편 이와 관련 정재상 소장은 “산청은 영호남 지역에서 의병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곳 중의 한 곳이다”며 “이번 문건은 산청 지역민이 항일투쟁에 대거 참여했다는 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 중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산청지역을 중심으로 경남 항일의병 정신을 기리고 선양할 수 있는 기념사업이 펼쳐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기사와 사진속의 나이는 당시 기준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