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군의 민원 해결사, 잔다르크로 불립니다” – 김향란 거창군의원 인터뷰

  • 등록 2026.03.24 17: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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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이 되기 전에는 어떤 일이나 활동을 하셨는지요?
◆ 부산 남포동 ‘홍실 클래식 음악다방’에서 디제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 사범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이후 초·중·고 사회과목 기간제 교사로 25년을 근무했고, 정치 입문 직전까지는 7년간 논술학원을 운영했습니다.

◇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방의원에 당선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해 주세요.

◆ 친정 부모님은 전남 순천이 고향이신데, 결혼 후 부산 송도로 이주하셔서 3남 3녀, 6남매를 딸·아들 차별 없이 모두 대학까지 보내실 정도로 교육열이 높으셨습니다. 부친은 크라운 맥주회사 관리부서에서 근무하셨고, 어머니는 1960년부터 연탄 판매상을 운영하시며 정직하고 깨끗한 후보를 돕는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호남향우회 활동과 민주당 소속 각종 선거 출마자, 특히 고 김대중 대통령을 후원하는 활동을 하셨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남편을 따라 거창으로 이주했습니다. 거창에는 친척이 단 한 명도 없었지만, 가족들을 비롯해 학부모님과 제자들, 기간제 교사 시절 함께 근무한 교장선생님들과 교사들, 이웃들의 도움으로 정치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7대 군의회는 민주당 비례대표로 입성했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지역위원회 주요 인사들이 지역 내 제도권에 거의 없다 보니, 지역 문제를 푸는 방식에 대한 관점 차이가 컸습니다. 저는 오직 주민만 생각하고 지역 발전만을 위해 헌신하는 군의원, 일꾼의 이미지를 갖게 됐고, 폭넓은 주민들의 호응을 받아 8대는 무소속으로 당선됐습니다.

이후 9대에는 지역구 국회의원님의 간곡한 요청으로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민원 해결사’, ‘거창군의 잔다르크’라는 별칭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적잖은 주민들께서 “김향란은 어떤 당이든 이름만 보고 찍어준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인정해 주고 계십니다.

◇ 정치인으로서 하고 싶은 일, 정치를 하는 이유나 목표는 무엇인가요?

◆ 거창에서 초·중·고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거창을 속속들이 알게 됐습니다. 학교가 많은 산촌인 거창이 교육도시일 뿐 아니라 문화·예술의 도시, 건강하고 안전한 도시, 살기 좋고 청정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림관광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또 인구 증가를 위해 아이들과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루고,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것이 부모님께서 평생 보여주신 ‘정치를 하는 이유’이자,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와 목표입니다.

◇ 정치인으로서 활동을 통해 어떤 성과를 거두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거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활동은 무엇입니까?

◆ 정치적 성과라고 하면, 지역 문제나 주민 민원이 발생하면 “김향란한테 가면 된다, 어지간한 건 다 해결하더라. 만일 해결이 안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알려주고, 어떻게든 해결해 주려고 한다”는 말을 주민들이 많이 하신다는 점입니다.

◆12년에 이르는 활동이라 다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주요 성과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학교가 많은 곳에 신설되는 구치소 부지 이전 요구
- 교육도시이자 친환경 무상급식의 메카로서의 위상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 지키기
- 외식업소와 경로당 입식화 공약 해결
- 조례 개정을 통해 출산·양육 지원을 위한 셋째 아이 건강보험료 지원사업의 만기 보험금을 군 세입으로 넣지 않고, 양육자에게 지급하도록 개선해 실질적 양육 지원책 마련
- 지역거점병원인 적십자병원 조속 이전과 공공 산후조리원 신설 촉구
-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사업 선제적 제안 및 예산 확보
- 시각장애인 보행환경 개선 및 ‘들려주는 전자신문’ 구독료 지원 조례 제정
- 거창국제연극제 정상화를 위한 각종 노력
- 군립미술관 건립 촉구 제안으로 예산 확보, 현재 용역 진행 중
- 관광지를 활용한 굿즈 개발 및 판매
- 도시재생과 공공디자인을 위한 각종 정책 마련
- 지역사랑상품권 시행 제안
- 외국인 기간제 근로자 유치 제안

◆환경 분야에서도 관심을 갖고 ‘환경실천단’을 조직해 꾸준히 활동했습니다.
- 제대로 된 분리배출을 위한 클린하우스 관리와 주민교육
- 일회용품 안 쓰기, 다회용품 쓰기 운동 제안
- 장례식장부터 다회용기와 ‘또쓰컵’을 제공하고, 세척사업을 자활사업과 결합해 새로운 일자리 사업 지원체계 마련에 도움
- 코로나와 함께 폭증한 택배로 인해 버려져 환경오염의 주범이 된 아이스팩 수거·재활용 시스템 마련
- 환경실천단 회원들과 함께 누적 10만 개 이상 세척 후 택배로 무료 배송해 재활용하도록 함

또한 공동주택 지원 정책, 빈집 전수조사를 통한 활용 방안, 나대지·노후 건물 매입을 통한 마을 공영주차장 설치, 주차 공유제 건의, 건설기계 공영 차고지 신설, 아월교 안전대책(교명주 철거 이전 및 회전로터리 신설), 회전로터리 주변 건널목·방지턱 고원형 시공, 도로 표지병을 활용한 골목길 밝히기 사업, 검정 아스콘 일색인 골목길을 초록·갈색·노랑 등 밝은 색으로 포장 제안 등 교통·안전·경관 개선에도 힘썼습니다.

산림·환경·농업 분야에서는 6차 산업 활성화를 위해 보전녹지 일색인 지목을 ‘원물 가공공장 신축이 가능한 생산녹지’로 확대할 필요성을 제안해 후속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고, 상수도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 중 월천·죽동의 50년 숙원사업인 상·하수도 신설 사업을 해결했습니다.

또 위험한 도로·농로 선형 개선, 배수지 설치 및 관리, 교통 사각지대 반사경 설치, 어두운 곳 가로등 설치 등 생활 밀착형 민원 해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 정치활동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과 좌절, 고통이 있었다면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 11명 군의원 중 유일한 외지 출신이지만, 주민들이 한결같이 저를 최고의 일꾼으로 인정해 주시고 계속 선택해 주셔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고 있습니다.

의정활동은 혼자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군의회 안에서 나머지 10명의 동료 의원들과 협조·소통·토론·합의가 필요한데, 혈연·지연·학연 위주의 소통 구조가 저에게는 매우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지역구 경쟁 상대라는 이유로 ‘카더라’ 언론을 동원해 ‘아니면 말고’ 식의 기사를 쓰고 공격하며 괴롭히기도 했습니다. 자녀와 남편을 공격하고, 사유재산을 털고, 고소·고발을 이어가며 수년간 법정 싸움이 계속됐습니다. 정신적·경제적·시간적으로 큰 대가를 치르며 고통 속에서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늘 감당할 만한 고통을 주시는 주님”이라고 믿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방짜유기를 두드려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돌리고 제 할 일을 챙기고, 맡은 일에 집중하면서 버텨냈습니다.

◇ 정치인으로서 가장 힘들고 고민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의회 안에서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불이익을 감수하며 왕따를 당할 때,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톨릭 신자로서 기도하고, 더 발로 뛰며 일에 매진했습니다.

또 하나 힘든 점은, 자신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민원인을 만나는 일입니다. 공익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 군의원을 ‘자기 말대로 안 들어준다’는 이유로 돌변하는 분들을 간혹 보게 됩니다. 그럴 때 벽을 대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되어 힘들고 고민스럽습니다.

반대로 친한 분이 사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사업의 방향을 왜곡해 공익성을 저해하려 할 때, 그것을 과감하게 바로잡지 못하고 고민하게 되는 점도 어렵습니다.

◇ 거버넌스 관련 의정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 주민 생활 개선, 편익 증대에 크게 기여한 활동은 무엇인가요?

◆ 거창군 행정은 연고 중심, 서열 중심, 토호 문화가 깊이 자리 잡은 가운데 굵직한 결정들이 이뤄지던 곳입니다.

구치소를 학교 많은 곳에 유치하면서, 교육도시 거창군 34개교에 속한 학생·학부모를 비롯한 교육 가족들이 구치소 이전을 위해 싸우는 과정에서, 이전파와 찬성파로 세대 간·마을 간·심지어 가족 간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유치의 근거가 된 마을별 구치소 유치 찬성 주민들 ‘목도장 날인’ 행위를, 구치소 반대파인 범대위가 고발해 이장들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마을의 주요 행정서류에 이장님이 대신 날인하던 오랜 관습이 일제히 사라졌습니다.

이후에는 주민들이 직접 의견을 내고 수렴하는 ‘숙의 민주주의’로 바뀌게 됐습니다. 이는 거버넌스가 지역에 뿌리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됐습니다.

◇ 거버넌스 철학과 협치에 대한 의견을 들려주십시오.

◆ 거버넌스는 공공행정의 새로운 지평이자 패러다임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통치와 행정에 의사결정자로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민들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다양한 입장을 살펴, 자칫 놓치기 쉬운 행정의 일방적 결정으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통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창군은 최근 구인모 군수님이 화장장을 유치해 용역을 마무리하고 터파기 토목공사 중입니다. 화장장을 자기 동네에 설치하길 원하는 주민은 거의 없지만, 군수님께서 원거리 화장장까지 가야 하는 상주들을 위해 민선 8기의 제1호 공약으로 화장장 신설을 추진했습니다.

추진 과정에서 12개 읍면을 대상으로 희망 마을을 공모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주민 편의 조건을 제시하고, 이장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스스로 참여해 토론하고 협의해 신청하도록 했습니다. 일종의 마을 공모 사업 형태로 진행해 ‘유치 경쟁’이 생기도록 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입니다.

이로써 대표적 혐오시설인 화장장 신설 사업을 ‘편의 사업’으로 발상 전환하는 ‘덕치 행정’을 펼쳤습니다. 화장장 신설사업이 이렇게 큰 갈등 없이 이뤄진 곳은 거창군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구치소 결정은 주민투표로, 화장장 유치는 마을 구성원들이 참여해 토론을 통해 결정하다 보니, 혐오시설도 편의 사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 교육의 기회가 됐습니다. 거버넌스·협치의 소중한 의미를 일깨운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 향후 지방정치인으로서, 주민과 함께 하고 싶은 포부나 비전이 있으시다면요?

◆ 주민들이 어려움을 당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또 기초의원 정당 공천 폐지와 활동비·수당 현실화를 통해, 전문가 집단과 역량 있는 인품을 가진 지역 리더들이 의회로 많이 입성하길 바랍니다. 성숙한 동료 의원들이 소신과 철학을 갖고 의정활동하는 모습을 염원합니다.

◇ 그 밖에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자유롭게 말씀해 주세요.

◆ 대학 2학년 때 큰 교통사고를 당한 후 자동차가 무서워 멀리하게 됐고, 환경을 위해서도 바쁘면 택시를 타고, 시간 여유가 있으면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닙니다. 그러다 보니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주민들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상점이나 업체 방문도 쉽고, 대민 접촉도 수월해 ‘차 없는 군의원, 뚜벅이 군의원’으로 주민들께 알려져 있습니다. 주민들께서 신기해하시고 대견해 하십니다.

저는 “10분만 더 일찍 나서고,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민원인은 민원 제기 전 수십 번을 고민하고 제기하는 만큼, 답답해하는 민원인의 속을 시원하게 해 드리려고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해결이 안 되면 신속한 답변이라도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또 “물은 오래되면 썩는다”,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말로 무조건 일반화하지 말고, 후보마다 옥석을 가리는 분별력을 갖고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일을 잘하고 성실한지, 인품은 어떤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경력을 보고 유권자들이 권리를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후보들에 대해 자세한 관심과 판단으로 선택해 주시길 희망합니다.

◇ 음악·그림·커피 등, 평소 좋아하시는 것들에 대해 들려주세요.

◆ 대학 시절 남포동 클래식 다방에서 디제이 아르바이트를 할 만큼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대학 2학년 즈음, 우리 다방에 자주 오시던 부산 혈액원 근무 아카데미 선배가 어느 날 뮤직 박스 너머로 나오라고 손짓하더니, 잘 모르는 분을 한 분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분은 같은 아카데미 선배로, 1학년 마치고 군대 강제 징집됐다가 복학하지 않고 다른 사람 신분으로 노동운동을 하며 금속노조 결성을 위해 금형 주자틀 만드는 일을 하다가, 뜨거운 주물에 화상을 입어 일을 못하게 된 분이었습니다. 병원비와 생계가 어려워 매달 도와주고 있다고 하더군요.

약한 체구에 ‘빡세다’는 금속노조 현장에서 일한다는 선배가 왠지 끌리고 짠하게 보여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노조 소식지 만드는 일을 도와주고, 우리 집 세탁기로 빨래도 해다 주고, 먹거리도 챙겨주고, 월급 받으면 옷도 사주고, 자갈치 시장에서 연탄불 곰장어 안주에 소주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쌓았습니다.

1987년 거센 정국은 대학가뿐 아니라 노동현장의 민주화 요구가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시기였습니다. 부산 서면, 부산역 앞은 연일 최루탄으로 범벅이었습니다. 수배자·구속자도 속출했고, 지금의 남편인 그 선배도 위장 취업자로 수배자 명단에 올랐습니다. 구속 후 풀려난 뒤에는 교직원 노조의 필요성과 교육운동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복학하게 됐고, 저는 더 열심히 뒷바라지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바쁘다 보니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베토벤·모차르트·바흐 교향곡부터 영화 주제곡, 샹송, 깐소네, 오페라 아리아, 가곡 등 소품을 즐겨 듣습니다. 그림은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전시회는 빠지지 않고 다니는 편입니다.

즐겨 마시는 차는 카모마일, 보이차, 말차라떼이고, 여름에도 따뜻한 차를 좋아합니다. 대학 다닐 때 커피 한 잔 값이 쌀 한 되보다 비싸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됐고, 콜라는 ‘매판 자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지금도 잘 마시지 않습니다.

◇ 귀하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사건, 책,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고,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요?

◆ 부산 남성여고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허재란 친구가 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 창문 너머 남항동 앞바다를 보면서 시를 읽고, 대학가요제와 클래식 음악을 즐기고, 시화전을 보러 다니며, 시와 글을 쓴 뒤 그림으로 바탕을 꾸며 서로 선물로 주며 놀았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친구였고, 지리 선생님을 좋아해 같은 대학 지리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친구가 미국으로 간 후에도 우정을 이어갔지만, 수년 전 병마로 주님 곁으로 서둘러 떠났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남기고 간 딸과 어머니를 친정엄마처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 후 책을 좋아해 학술·이념 동아리 ‘아카데미’에 들어가 진지하게 사는 선배님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독재정권에 저항한 광주 시민들의 희생 사진첩은 제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을 흑과 백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다가, 변증법적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통해 개발 과정에서 떠밀리고 희생되는 도시 빈민과 장애인의 차별 문제 등 사회 구조적 모순과 역사적 인식에 관심을 두게 됐습니다.

◇ 존경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전태일입니다. 자신과 부모·동생을 보살피기도 힘든 처지에서 공장의 ‘어린 동생들’과 동료들을 챙겨주고, 급기야 이 땅의 모든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놓고 불살랐기 때문입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국내·해외 여행지는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국내는 고향 부산 송도입니다. 어릴 때부터 해만 뜨면 바닷가 모래밭과 바위를 들추며 놀았고, 친구들과 들과 산을 뛰놀았습니다. 봄이면 쑥과 나물을 캐서 횟집에 팔고, 산딸기와 망개를 따서 목걸이를 만들어 하나씩 따먹으며 놀았습니다. 바다만 보면 고향 부산 송도가 오버랩 됩니다. 부산 송도는 항상 머릿속과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해외 여행지는 몇 달 동안 머물렀던 뉴질랜드 북섬의 온천도시 로토루아입니다. 25년 전과 5년 전에 다녀왔는데, 변하지 않고 예전 모습 그대로여서 참 좋았습니다. 공기도 맑고, 날씨도 온화한 해양성 기후에, 사람들이 천사처럼 친절하고 착했습니다.

◇ 지난 선거운동 중 인상 깊은 유권자나 감동적인 사연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 거창은 남편을 따라 온 타향이라,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모든 주민이 내 핏줄이다”라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대하는 편입니다. 기억을 잘하려고 노력하고, 메모하는 습관도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 있습니다.

길에서 유세할 때면 음료수와 간식을 건네며 응원해 주시는 주민들이 큰 힘이 됩니다. “꼭 당선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 느끼게 됩니다.

◇ 자신을 정의할 때, “나는 지역의 ○○○○ 일꾼이다”라고 한다면?

◆ 주민들은 일찌감치 제 별칭을 ‘거창군의 민원 해결사, 잔다르크 김향란’이라고 부르십니다. 저를 통해 주민들은 군의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고들 말씀하십니다.

◇ 의정 활동 중 현장의 민심을 체감한 일화가 있다면요?

◆ 구치소 신설 과정에서 주민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가족 간에도 갈등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구인모 현 군수님이 5자 협의체를 통해 주민투표 방식으로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론을 내리고, 전 주민 직접투표로 결정해 수년간 이어진 찬반 논쟁을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반대 측 전면에 서서 삭발까지 감행하며 반대했지만, 주민투표 결과에 승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민들의 현장 뜻을 존중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 내년 선거에 임하는 각오와 주요 공약, 지역 비전, 재출마의 의미를 말씀해 주세요.

◆ 내년 선거는 네 번째로 치르는 선거입니다. 최다 득표를 목표로 차근차근 뛰고 있습니다.

주요 공약을 분야별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 교통 분야
- 교통안전 대책 강화
- 주차 공유제 시행, 마을 주차장 발굴

- 교육 분야
- 교육복합센터 추진, 평생교육 다양한 지원
- 초·중·고 학생 복지 바우처카드 지원금 확대

- 청년 정책
- 청년 친화 도시 조성을 위한 세부 정책 발굴·지원·활성화

- 문화예술 분야
- 사계절 연극제와 거창국제연극제 활성화
- 군립미술관 건립 추진

- 관광 정책
- 2026년 ‘거창방문의 해’를 맞아 다양한 단체와 행사를 되도록 거창에서 열리도록 하고, 방문객 수 목표를 설정하는 현황판 제작
- 동서남북 관광벨트 셔틀버스 활성화로 교통대란 해결책 마련
- 창포원 어린이 실내 놀이시설 확대

- 환경 분야
- 클린하우스 읍내 20개 확대와 분리배출 전문가 양성
- 다회용기 사용 확대 방안과 예산 확보
- 창포원 자전거 확충

- 산림 분야
- 6차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 조성을 위해 생산녹지 확대 방안 추진

- 건축 분야
- 공동주택 지원사업 적극 홍보 및 지원 확대
- 빈집과 엘리베이터 없는 소규모 빈 아파트를 임대·리모델링해 청년과 외국인 노동자 숙소로 활용

- 토목·건설 분야
- 월천 동변방앗간 아래 교량 건설 준공
- 소규모 회전로터리 설치 추진
- 쉼터 앞 5거리 안전 대책(이정표 유도선, 도로 표지병, 과속방지 카메라 설치, 급경사 도로 ‘위험·천천히’ 표시, 고원형 방지턱 설치)

- 농업 분야
- 외국인 노동자 유치 확대
- 보조 농기계 확대 방안과 고령농·여성농을 위한 ‘밭 갈아주기’ 지원

◆ 지역 비전
2026년을 ‘거창방문의 해’로 설정했습니다. 그간 조성한 동서남북 관광벨트와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산림·농업을 비롯한 각종 분야와 부문별 기관·단체가 함께 전국 및 광역 규모의 문화·예술·체육 행사를 유치하고 홍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청년 친화도시, 여성 친화도시, 고령 친화도시 이미지를 바탕으로, 안전도시·건강도시·교육·문화·체육·관광도시로서 ‘살기 좋은 거창’, 연간 누적 방문객 1천만 명 이상을 목표로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 4선 도전의 의미
주민들께서 도의원이나 군수 출마를 권유하시지만, 저는 군의원으로서 마을 주민들과 이장님을 도와주고 군수나 집행부와 소통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의정활동을 하면 할수록 보람이 크고, 지역 미래 비전이 더 잘 보입니다. 민원 해결 방식과 속도에도 가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소멸을 늦추는 것을 넘어, 지역을 재활성화해 영원히 발전하는 ‘지속 가능한 거창’을 만드는 데 혼신을 다하고자 4선에 도전합니다.

◇ 주요 수상 경력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방의원 선거 공보의 매니페스토 우수사례를 발굴하기 위해 시행한 ‘2018 지방의원 매니페스토 지방선거부문 약속대상’에서 우수상을 받았습니다.

행정자치부 소속 여의도정책연구원에서 주는 ‘대한민국 지방자치 평가연계 우수상·최우수상’을 2년간 연속 수상해 대상도 받았습니다.

또 경남시군의장단협의회에서 주는 ‘경남 의정봉사상’을 2회 수상했고, 한국지방의회학회에서 주는 ‘한국지방 의정대상’ 등 수많은 공로패와 표창패를 받았습니다.

백형찬 기자 gc981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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